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고지전, 우리는 왜 싸워야 했는가

by ReviewFlix 2023. 9. 10.

2011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영화 고지전은 기존 한국의 전쟁영화들의 식상함을 날려버리는 참신하고 흥미로운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영화, 고지전의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고지전 메인 포스터
고지전 메인 포스터

영화의 줄거리 요약

한국전쟁의 마지막 날,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마지막 전투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됩니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립니다. 애록고지로 향한 강은표는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되는데, 유약한 학생이었던 김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습니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강은표는 오직 병사들의 목숨으로만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로 배우는 역사 이야기

포항철수작전의 진실

영화에서 악어중대 부대원들은 1950년 8월 포항철수작전에 따른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내용으로 나옵니다. 퇴각 중이던 해군상륙정이 인원 초과로 어려움을 겪자, 주인공 신일영(이제훈 분)이 중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승선을 요구하는 아군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죽이는 상황이 설정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6.25 전쟁 중의 포항철수작전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 2만여 명을 무사히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 자랑스러운 작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상륙정은 4척의 일본 LST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대한민국 해군 상륙정이 사용되는데, 이 부분이 현실과 다릅니다. 또한, 영화에서 20대 초반의 신일영은 탁월한 리더십을 보이며 이등병에서 대위로 진급하지만, 포항철수작전의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르핀 중독자가 되는 내용이 표현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1개 중대에 배치되었던 장교는 소위와 중위를 합해 1~2명이었으며, 소위(소대장)들은 전장의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면서 일주일을 살아남기 어려웠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한 장교들 중에서도 전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급한 간부들의 리더십과 애국심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유재호 대위의 역할이 부족하게 묘사되어 실제 사건과의 일치가 떨어지며, 이로 인해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또한, '고지전'의 등장인물 중에서는 애국심에 불타 죽고자 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서로를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냉혈 하게 싸우는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악어중대 대원들은 적이 쓰러지는 순간 2초 후에 총소리가 울린다고 하여 '2초'라 불리는 명사수(김옥빈 분)를 포효하려는 장면에서, 전우들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냉혈한 모습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고지전의 모티프(motif)가 된 금성, 백마, 화천 전투

가상공간인 애록고지는 영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투 장소로 묘사되었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애록고지는 금성전투로 유명한 금성고지(강원 철원군 김화읍) 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고지 주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설정에서는 철원 북서쪽 백마전투로 유명한 395 고지 전투가, 휴전을 앞두고 벌이는 마지막 공세를 펼치는 대목에서는 가곡 비목의 발상지 화천군 425 고지 전투를 연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악어중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10사단이라는 설정을 사용하여, 괜한 구설이나 명예훼손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휴전을 위한 협상 기간이 6.25 전쟁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지만, 실제로 휴전협정 조인식은 15분 만에 끝이 났는데,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에 서명을 마친 수석대표들은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고 판문점을 떠났으며, 전방에서는 두 시간 뒤인 정오 전후로 휴전협정 소식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휴전협정 직후 기쁨에 들뜬 악어중대 대원들이 북한 인민군 중대장 현정윤(류승룡 분)의 중대와 개울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국군 및 유엔군과 교전을 벌였던 주요 대상은 북한군이 아닌 중공군이었습니다. 1.4 후퇴 이후, 북한 거주 청년 및 장년들이 대거 남하한 영향으로 당시 북한군은 병력 충원이 원활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화 고지전이 모티프를 얻은 금성, 백마, 화천전투에서도 국군은 중공군을 상대했지만, 영화에서는 인민군이 등장합니다. 결국 6.25 전쟁 발발 후 3년 1개월 2일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포탄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협정문 제63항에 따르면 휴전협정은 오후 10시에 효력이 발효되었지만, 휴전일 낮 12시경부터는 전선 어디에서도 지상 전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휴전 소식에 따른 기쁨도 잠시, 상급 부대에서 오후 10시까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탈환하라는 총공세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협정문 제63항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극적인 완성도를 위해 장훈 감독은 영화 속 악어중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려는 총공세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감상평

1914년 12월 24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 북부 독일군 점령지역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연합군과 독일군은 서로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하루동안의 휴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날, 그들은 전장에서 함께 한 동지들을 위한 합동 장례식을 갖고 기도를 올렸으며, 담배를 공유하고 가족사진을 서로 보여주었습니다. 무서운 죽음의 장소에서 조금이나마 인간성을 되찾으며, 축구 경기를 즐겨하며 서로를 이해해 나갔지만, 다음날, 그들은 다시 총격전을 벌였습니다. 영화 고지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100억 원대의 높은 제작비를 투입한 고지전은 화려한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장에서의 카메라 움직임과 넓은 고지에서 전투하는 군인들, 그리고 흩어져 있는 시체들의 장면은 관객들을 전쟁 현장에 몰입시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는 영상만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 속의 화려한 장면들은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게 되는데, 이 그림자들은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전투 중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간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고지에서 일정한 장소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적과 싸워야 하지만, 휴전 협정이 성립하면 서로를 상대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왜 다시 서로를 죽이기 위해 무력을 휘두르는 걸까요? 이 의문은 영화를 통해 더 깊게 다루어집니다. 고지전은 한국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 즉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인물들과 그들의 집단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캐릭터를 조립하고, 우연과 필연을 섞어 관객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동시에 그룹 간의 관계와 개인 간의 이야기를 서로 얽어나가면서도 국군 캐릭터들에게는 각각의 개성을 부여합니다. 반면, 북한군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특징을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이러한 설정은 배우들의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며, 국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반면, 북한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평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수는 악어중대의 강력한 리더로서 성숙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의 연기는 때로는 냉정하고 무자비함을 강조하여 '악'의 느낌을 전달하는데, 이와 대조되는 신하균은 전쟁으로 변화해 가는 캐릭터를 감성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잊지 않습니다. 고창석과 류승수는 감초와 같은 역할로 영화의 재미를 더하고 이제훈과 이다윗 역시 자신의 역할을 성취적으로 소화해 냅니다. 그러나 류승룡의 북한군 장교 역할은 비중이 낮아서 연기 평가가 어려우며, 유일한 여배우인 김옥빈 역시 특별한 연기력을 요구하지 않는 역할에서 그친 것을 조금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반응형

>